
포멜로빈은 흔히 말하는 ‘차를 마시는 모임’을 의미하는 다회(茶會)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포멜로빈의 다회에서는 실제로 차(Tea)를 다루기도 하지만 이에 커피를 대입하여 다회를 재해석하고, 그외의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곁들여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키는 중에 있습니다.
포멜로빈의 다회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전까지 진행했던 커피 세레모니(Coffee Ceremony)에 대한 배경 설명도 필요할 듯 합니다. 커피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에티오피아의 전통인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 초대한 손님을 환대하는 의식)로부터 영감을 얻어 커피를 통한 환대와 휴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환대와 더불어 자신의 시간에 여유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뜻이 점점 더 굳건해지며 한국의 전통 차문화인 다례(茶禮)를 지나 일본의 차문화로 일컫는 다도(茶道) 문화까지 탐미한 끝에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망라하여 다회(茶會)라는 정수에 닿았습니다. 포멜로빈에서 선보이는 다회는 환대와 정성, 그리고 진심과 영감이라는 표현을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차 문화를 보여주는 현재 심사정의 ‘송하음다’(松下飮茶·부분), 지본담채, Courtesy of 삼성미술관 리움.
다회를 전개하기에 앞서 이 프로그램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건 다름 아닌 다도였습니다. 다도는 흔히 일본의 차문화로 불리지만 그 역사적인 배경과 흐름을 톺아보면 그 안에서도 한국적인, 아주 진귀한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점이 저희를 본능적으로 다도에 이끈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부터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차문화를 형성하고 있었고, 특히 삼국시대에도 차문화는 이미 성행했었다는 증거들이 여럿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와 강력한 개연성을 지닌 차문화인 만큼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차 문화가 크게 융성했다고 보여집니다. 일례로 고려시대(918-1392)는 한국 차 문화의 황금기로, 왕실과 귀족, 사찰을 중심으로 세련된 차 문화가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궁중에는 차와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다방(茶房)'이라는 공식 기관이 있었으며 , 팔관회나 연등회 같은 국가의 중요한 제례 의식에서는 부처와 신에게 차를 올리는 헌다례(獻茶禮)가 필수적인 절차였다고 합니다. 이는 차가 이미 한국 상류층의 생활과 의례에 깊숙이 통합되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의 차문화인 다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나라(奈良) 시대 도다이사(東大寺)의 기록인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에 따르면 백제계 승려인 행기(行基, 668-749)가 사찰 주변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이 전해집니다. 이는 일본으로의 차 문화 전파가 단순히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접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적 토양에서 한 차례 성숙하고 변용된 문화가 한반도의 인물들을 통해 일본에 이식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즉, 일본이 처음 접한 차 문화는 순수한 중국의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불교적, 문화적 해석이 가미된 '한중 문화 패키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역할은 단순한 중개를 넘어, 일본 차 문화의 씨앗을 뿌린 근원적 기여에 가깝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차(Tea)에 대한 해석은 문화에 따라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동일했다. Via. My Daehan.
공유된 뿌리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의 차 문화는 각기 다른 사회·철학적 토양 위에서 독자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국의 차 문화를 대표하는 개념인 다례(茶禮)는 한국의 차 문화는 유교적 가치인 '예(禮)'를 핵심 정신으로 삼습니다. 다례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기술이 아니라, 차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와 공경을 표현하는 의례적 행위라는 설명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차 문화는 불교의 영향력 감소와 함께 선비(士大夫) 계층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선비들은 차를 마시며 학문을 논하고, 자연의 이치를 사유하며, 자신의 마음을 닦는 수신(修身)의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차 문화는 인위적인 기교나 엄격한 형식미보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신을 추구했습니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태도 속에서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이는 일본 다도의 정형화된 동작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주로 찻잎을 우려 마시는 엽차(葉茶) 방식은 이러한 자연스러움과 절제미를 반영하는 음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차 문화는 헤이안 시대 귀족과 승려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무로마치 시대에는 무사 계층을 중심으로 차의 품종을 맞히는 사치스러운 놀이인 '투차(闘茶)'가 유행하는 등 화려한 측면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15세기부터 선(禪) 사상을 바탕으로 소박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